맹꽁이의 결혼
글 : 오소운 목사
. 맹꽁이의 결혼 조건
1951년 10월, 북한 김일성 도당들의 남침으로 일어나 동족상잔의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가을은 무르익어 갔습니다. 논밭마다 가득 찬 곡식을 바라보며 맹꽁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는 노래를 지었습니다.
1. 풍년일세. 풍년일세. 어화디야 풍년일세
오곡백과 무르익어 볼품도 좋을시고!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금물결 넘실
삼천리 금수강산 대풍년이로다.
2. 하나님께 복을 받은 우리 강산 좋을시고
땀에 젖은 얼굴마다 웃음꽃 가득 폈네.
씨를 뿌려 김을 매고 가꿔 온 이 곡식
하나님이 탐스럽게 여물게 해 주셨네.
3. 감사하세. 감사하세. 하나님께 감사하세.
올해에도 우리 양식 넉넉히 주시었네.
햇곡식에 햇과실에 우리의 몸과 맘
모두 주께 드리오니 이정성 받으소서.
이 노래는 후에 작곡가가 된 맹꽁이가 아래 곡조와 같이
한국 민속풍으로 흥겹게 작곡하여 그의 [신작 찬송가]에 실렸습니다.
그러나 맹꽁이네 농사는 형편없었습니다. 산자락 끝을 개간하여 만든 논은 천수답(天水畓)이 되어 버려, 남의 논보다 절반 이하의 소출밖에 안 났습니다. 그러나 맹꽁이는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고,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교회에 가서 찬양대들에게 연습을 시키고,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아리실교회 초기 찬양대. 여성들은 지금 거의 모두 교회 권사가 되어
열심히 봉사하고 있고, 남자 두 사람은 목사로 은퇴하였다.
이미 하늘나라로 간 사람도 6명이나 있다.
맹꽁이가 밤마다 이렇게 음악을 가르친다는 소문이 인근 교회에 알려져, 이웃 교회 청년들도 모여들어 배웠고, 딸 가진 집에서는 맹꽁이를 사위 삼겠다고 여러 경로를 통해 청혼을 해 왔습니다. 그럴 적마다 맹꽁이는
“나는 신학을 마치고, 미국 유학까지 가서 박사가 된 다음에 결혼할 겁니다.”
라고 점잖게 거절을 했습니다.
1951년 10월 18일 저녁나절이었습니다. 맹꽁이는 그 날도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6촌 경원(尹慶源, 1930- 현 수원 종로감라교회 원로장로) 형이 찾아왔습니다. 경원이형은 맹꽁이보다 한 살 위인데, 수원에서 5년제 중학교를 마치고 고향 영천리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좋고 생각이 건실하여 맹꽁이와 의기투합되는 형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시며
“아니 네가 다 저녁에 웬 일이냐?”
하고 반기셨습니다. 경원이형은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는 느닷없이
“당고모님, 목사 딸 며느리로 데려다 어쩌려고 그러세요?”
하고 따지 듯이 물었습니다.
“아니, 밑도 끝도 없이 웬 목사 딸을 며느리로 데려와?”
“윤 목사님이 왜 오셨는지 아세요? 맹꽁이를 사위 삼으려고 테스트하러 온 거예요. 따님이 이화여대에 다닌다는데, 맹꽁이 소문을 듣고 왔대요.”
“윤 목사님은 어제 가셨는데.”
“그래서 제가 이거 안 되겠다싶어, 참한 규수 선을 뵈려고 달려 왔지 뭐예요?”
“누구 맘대루 선을 봐. 형, 난 앞으로 10년 더 있어야 결혼할 거야. 괜히 헛수고 말어.”
그러자 경원이형이 눈을 부라리며 맹꽁이에게 쏘아붙였습니다.
“아버지께 불효하더니, 이젠 어머니께도 불효를 하겠다는 거야? 고모님이 이렇게 편찮으신데, 돌아가신 담에 후회 말고 내 말대루 선이나 보라구.”
“어떤 규순데?”
“서울에서 피난 온 피난민 아가씨인데, 믿음이 좋고 착하고, 거기다가 예쁘기까지 해요.”
“피난민이라구?”
어머니가 시큰둥하게 대꾸하시자 경원이가 반박을 했습니다.
“피난민이면 어때요? 사람 나구 돈 났지 돈 나구 사람 났나요?”
“네 말이 맞다. 그런데 가족은?”
“딸만 둘인데 막내딸이에요. 언니는 시집 갔구 지금 미력뎅이 살아요.”
“뭘 해 먹구 살지?”
“피난민이 할 게 뭐 있나요? 집 앞에 좌판을 벌이고 구멍가게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동생, 동생이 원하는 결혼 조건은 뭐지?”
“난 다른 건 안 따져. 첫째 모태신앙이냐? 둘째 건강하냐? 셋째 주일학교 선생과 찬양대를 하구 있느냐? 이것 뿐이야. 왜냐 하면 난 목사가 될 사람이니까, 사모가 주일학교 선생도 하고 찬양대도 해야 좋거든.”
그러자 경원이형은 손뼉을 딱 쳤습니다.
“내가 바루 왔네. 그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어. 게다가 아주 예쁘거든. 그럼 다음 주일이 10월 21일인데, 그 날 우리 영천리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우리 집으로 가서 선을 보도록 하지.”
“원 성미도 급하긴. 난 내가 바라는 신부 감의 조건을 말한 것이지,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다니까.”
맹꽁이의 말에 어머니가 서운하신 듯 입을 여셨습니다.
“쟤가 저렇다니까. 선이라두 보면 어때서…. 내가 빨리 죽어 없어져야 쟤가 편할 텐데….”
어머니의 자조적인 말씀을 듣고 맹꽁이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좋아요. 우선 형 말대루 일단은 선을 보지요.”
그 날 밤 맹꽁이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남의 귀한 규수를 선보고 마다 할 수는 없지 않으냐. 웬만하면 결혼하리라.
“아이구, 저 여자하구 일생을 어찌 사누?”
하고 첫 눈에 정이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결혼을 하자. 이렇게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2. 퇴짜맞은 맹꽁이
토요일 아침, 맹꽁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30리 떨어진 장지리(長芝里)로 갔습니다. 장지리에는 큰 누님네가 살고 있었습니다. 서울 북아현동에 살던 큰 누님은 매형의 고향인 장지리에 집을 하나 사서 살고 있었는데, 사진 기술이 있는 큰 매형은 전방 부대를 따라 일선까지 나가 UN군의 사진을 찍어, 돈을 잘 벌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UN군 장병들은 사진을 잘 찍었습니다. 큰 매형은 사진 값을 딸라로 받아 환 차익까지 생겨, 그 어려운 시절에 집을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청계리(淸溪里)는 장지리에서도 20리가 넘는 어머니의 고향입니다. 어머니가 민며느리로 시집오기까지 13년을 살던 곳입니다. 몸이 쇠약한 어머니는 한낮이 기울어 장지리에 도착하여, 누님네서 자고 밝는 날 아침 청계리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누님네서 하룻밤을 편히 쉬고, 모자는 큰 누님과 함께 아침 일찍 떠나 청계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어서 오우. 누이. 오 장로가 가고 나니 얼마나 외로운가.”
외당숙은 반가이 맹꽁이 모자를 맞았습니다. 맹꽁이는 외당숙 내외분께 큰절을 올리고 물었습니다.
“형은 교회 갔나보지요?”
“걔는 주일이면 교회에서 산단다. 주일학교다, 찬양대다, 걔 없인 안 되거든.”
외당숙모는 그러며 웃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교회로 가 보니, 대여섯 간 밖에 안 되는 초가 예배당 건물은 기역(ㄱ) 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맹꽁이의 기대는 허물어졌습니다. 예배드리며 얼굴을 보려 했는데, 남반(男班)은 왼쪽에, 여반(女班)은 오른 쪽에 있고, 코너에 강대상 있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어 찬송을 부르는데, 맹꽁이는 목소리를 죽이고 여반의 찬송 소리에 귀를 곤두세웠습니다. 여반에서 들리는 찬송 소리는 나이 먹은 여성들의 한 옥타브 아래로 부르는 찬송 소리에 간혹 젊은 음성이 들리는데, 곡조가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
(중매쟁이 말 믿을 게 못 된다더니, 설마 경원이형까지….)
맹꽁이는 순간 배신감 같은 걸 느꼈으나, 곧 자기도 목소리를 낮춰 부르면서 그쪽이라고 안 그러랴 싶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와 맺어지기를 기도하며 예배를 마치고 외당숙 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규수 댁에서는 어머니와 언니가 와 있었습니다. 남녀가 딴 방에서 점심을 먹고 안방에 모였습니다. 먼저 수인사를 나누고, 어른들이 자리를 비워준 다음 둘만 남게 되자, 맹꽁이는 찬찬히 그 규수를 뜯어보았습니다.
머리는 곱게 빗어 뒤로 매었고, 검정 치마에 흰 옥양목 적삼을 입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알던 누이동생 같이 친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여자와 일생을 같이 살아?)
하는 마음 속의 질문에
(못 살 이유가 없지.)
하는 생각이 들어 몇 마디 자기소개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때? 내 말 대로지?”
경원이형이 싱글거리며 물었습니다.
“아까 찬송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았더니 곡조가 영 엉망이던데.”
하자 경원이는
“그 아가씨는 부끄러워서 입도 뻥끗 못했을 거야. 그 목소리 동생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걸. 성악가 절루 가라야!”
맹꽁이는 그 말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 아가씨만 좋다면, 나는 OK야.”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색시 측에서 신랑감이 몸이 약해 소년과수 될 것 같아 맘에 안 든다는 것입니다. 그 때 맹꽁이의 체중은 44.5 킬로였으니까요.
장지리로 돌아오는 맹꽁이 모자의 기분은 참담했습니다. 맹꽁이의 기분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는 큰아들이 첫선 본 게 퇴짜를 맞았으니 안 그렇겠습니까!
장지리에서 그날 밤을 자고 다음날 집에 돌아온 맹꽁이는 ‘어떻게 되었느냐’ 는 찬양대원들의 등살에 짜증만 부렸습니다. 정말 맹꽁이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습니다.
다음 날, 맹꽁이가 새벽 기도에 다녀와 다시 세수를 하는데 경원이형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저께 색시 측에서 동생이 몸이 약하다고 거절한 것은, 순전히 색시 어머니의 생각이었대. 당사자는 OK라는 거야. 어제 저녁 당사자가 내게 찾아 와서, 이 결혼 꼭 성사시켜 달라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새벽에 달려왔어. 윤 목사님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지?”
맹꽁이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어 기뻤으나, 자존심을 내세워 말했습니다.
“누구 맘대로 싫댔다, 좋댔다 하는 거야? 난 그렇게 경박한 여자하고는 결혼 안 해.”
“그게 아니래두. 색시는 좋다는 거야. 그래 어제 하루 종일 엄마하고 싸워, 허락을 받아낸 당사자가 밤에 우리 집으로 달려 왔다니까. 빨리 약혼하고 결혼식 올려.”
맹꽁이는 최종 결단을 내렸습니다.
“좋아. 그 대신 일주일 후에 약혼식 하고, 그 다음 일주일 후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조건이야.”
“그럼 두 주일 후에 결혼하자는 거야? 왜 그렇게 서두는 거지?”
“늦어두 11월 하순에는 부산으로 간 학교에 복학을 해야 하거든.”
경원이형은 맹꽁이의 말에 순응하고 되돌아갔다가 저녁나절 다시 왔습니다.
“색시도 OK 했어. 다음 화요일에 약혼식 하는 거야.”
결혼이 성립되자 맹꽁이는 4촌 형수와 함께 안성 장으로 가서 약혼 선물로 싸구려 보석을 박은 눈깔반지 하나와, 금도금을 한 은 쌍가락지 하나를 사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화요일에 청계리로 갔습니다.
약혼식 주례는 윤 목사님이 해 주셨습니다. 맹꽁이는 눈깔반지를 약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결혼식 날자는 맹꽁이가 양보하여 두 주일 후 11월 13일로 정했습니다. 색시 집에서 아무리 몸만 가는 결혼이지만, 한 주일은 너무 빠듯하다는 주장에 맹꽁이가 양보한 것입니다.
사진사였던 나는 이 사진을 내가 준비해 경원이형에게
셔터만 누르도록 하고 직접 현상 인화하였다. 기념글씨도
내가 직접 쓴 것이다.
약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누님이 말했습니다.
“색시 어머니가 선물 받은 눈깔 반지를 풀어 보다 홱 도로 싸더라구. 어렵더라도 좀 더 비싼 걸로 할 걸 그랬나봐.”
그 말에 맹꽁이는
“누님, 선물이란 값이 아니라 마음이야. 목사 아내 될 사람이 패물이나 좋아한다면, 이 혼인 없었던 걸로 할 거야.”
맹꽁이는 단호했습니다.
3. 맹꽁이의 결혼
결혼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경원이형이 색시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내용은 어머니가 눈깔반지의 약혼 선물을 너무 서운해 하시니까, 결혼식에는 금가락지를 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맹꽁이는 실망을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답장을 썼습니다.
목사는 청빈하게 살아야 하며, 목사의 아내가 되려면, 패물 같은 것에는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내가 바라는 아내 감은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아내 카테리나와 같은 여성이라며, 그의 일화를 자세히 적었습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커다란 난관에 부닥치자 그는 골치를 싸매고 침대에 누워 좌절의 나날을 보냈답니다. 이를 본 카테리나는 상복(喪服)을 입고 울면서 방으로 들어갔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 ‘누가 죽었소?’ 하고 묻자, 그의 아내는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하고 대답을 하였답니다. 루터는 화를 내며,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말이나 되느냐고 따졌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당신이라면, 왜 이렇게 좌절해 있느냐?’ 고 나무랐습니다. 루터는 거기서 용기를 얻어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를 작사 작곡하고 종교개혁을 완성시켰다는 것입니다.
맹꽁이는 이 편지를 경원이형 편에 보내고, 결혼식 선물은 준비한 금도금 은가락지를 그대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맹꽁이는 식장 단장을 직접 하였습니다. 어려서 학교의 환경 미화를 맡아 하던 솜씨를 발휘한 것입니다.
결혼식 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데, 날씨가 차가웠습니다. 50리나 먼데서 가마를 타고 오다 보니, 오정이 지나서야 도착하여 교회로 올라가 예식을 치렀습니다.
웨딩마치는 맹꽁이가 헌납한 49건짜리 야마하 오르간을 맹꽁이의 선배 유 전도사가 치고, 주례는 선배이며 당회장이신, 김대조(金大造) 목사가 하였습니다.
이 사진은 외사촌 형 윤인원(尹仁源)이
결혼 기념으로 찍어준 것이다.
찬양대의 축가는 맹꽁이가 연습시킨 것 이상으로 지휘자도 없이 잘 불렀습니다.
밤이 되어 건넌방에 차린 신방에 든 맹꽁이는, 사방에서 문 창호지 뚫는 소리에 놀라 문을 보았습니다.
뚫어진 구멍마다 반짝거리는 눈알이 보였습니다. 맹꽁이는 창호지 가까이 가서 눈알을 가리키며 ‘요건 정섭이 눈, 요건 병옥이 눈, 요건 영숙이 눈’ 하고 하나하나 맞춰 나갔는데, 밖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
“어쩜! 귀신 같이 다 알아맞추네?”
그런데 누군가가 ‘뽀옹!’ 하고 방귀를 뀌었습니다.
“저건 분명히 병옥이의 방귀 소리다!”
맹꽁이의 말에 바깥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야아! 어쩜 병옥이 방귀 소리까지 알아맞추니….”
그러며 깔깔대는데, 와르르 소리와 함께 굴뚝이 무너졌습니다. 뒷켠 높은 창에서 엿보느라 굴뚝 위에 올라갔던 찬양대원들이 박장대소하며 웃어대는 바람에, 흙으로 쌓아 올린 굴뚝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러다간 집 다 무너지겠다. 그렇게 애써 엿보지 말고 집으로들 가거라. 내일 경과보고 자세히 할 테니까.”
그러며 맹꽁이는 불을 껐습니다. 찬양대원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바깥은 고요해졌습니다.
새색시와 한 이불 속에 든 맹꽁이는 먼저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무서운 전쟁 중에도 살아남아, 한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고, 두 사람 모두 주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평생 믿음을 지키며, 서로 사랑하며 주의 종의 가정으로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첫날밤을 경건히 보내며, 이야기만 하기로 하고 지난 이야기로 밤을 새웠습니다. 요새 사람들은 몇 년씩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니까, 상대방에 대해서 다 알고 결혼하지만, 맹꽁이 부부는 서로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결혼을 했으니, 지금 사람들이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결혼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밤이 ?도록 이야기를 해도 얘기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 중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유재헌(劉載獻) 목사의 부흥회 때 이야기입니다. 유 목사님은 맹꽁이에게 평생 찬송가 작가로 살 결심을 하게 한 분인데, 맹꽁이의 아내도 그의 부흥회에 참여하여 목사 될 사람에게 시집가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스승 유재헌 순교자님
유재헌 목사님은 처녀 총각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녀 총각의 믿음은 ‘쟁개비’ 믿음이야. 불을 때면 금새 바그르르 끓다가 금방 식어 버리는 ‘쟁개비’ 냄비 같은 믿음이야.
믿음이란 요셉과 같이, 다니엘과 같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목숨을 걸고 믿어야 하는, 변치 않는 믿음이라야 하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 어디인지 모르나 분명히 있다.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
이 말을 들을 때면 대개의 처녀 총각들은 꺄르르 웃고 맙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장석금(張昔今, 1935- )은 유 목사님 말씀대로 기도하기 시작한 지 3년이었습니다.
맹꽁이도 그 때부터 기도한 지 3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네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렇게 짝지어 주신 것을 굳게 믿고, 다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이루어져 지금까지 57년 동안 서로 사랑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맏아들 의환(義煥, 1952-1991)이 1975년 ROTC 장교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벌써 하늘나라에 가 있지만, 큰 아들 의환(義煥)이가 ROTC 장교로 임관 받던 날 찍은 사진이다. 큰아들은 목사로
주님께 봉사하다가, 먼저 부르심을 받아, 1991년 40세라는 한창 나이에 하늘나라로 불려 갔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 젊다고 방심하다가는 큰일 난다. 늘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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