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아버지의
사진틀을
갈았다
수염을 깎은 듯
미소도 조금
바뀌었다
이발소를 데리고 가던
아버지의 손가락 마디가
두엇 없던 손을
생각한다
언 몸을
금세 녹여주던
이발소의 연탄난로도
생각한다
연통에
쓱쓱 비누거품을 데우던
이발사의 거품붓도
생각한다
전쟁통에
열 번을 살아나와
열한 번을 총알 속으로
되몰려 갔다던
무심한 대화를
생각한다
아무도 몰래
어금니를 꽉 물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이미 이십년이 가까워
얼굴 하관이 마구
빠져나오는
낡은
사진틀을 새로 갈아
식탁 의자에
기대놓고
아버지의 관상을 본다
박복한
이마를,
우뚝한 콧날을,
어투를,
기침 소리를
형제들은 골고루
나누어 받았다
길지 않은 인중만은
아무도 물려받지
않으려 했으리ㅡ
허나
그도 알 수는
없다
날은 언제 풀리려나?
강추위다
돌절구에 물이 얼어
쩍하니 금이
갔다
할 수 없이 이번 봄엔
절구에 흙을 담아
꽃을 심으리
아버지가 가꾸던
꽃이 있었던가?
어느 핸가
샘가에 심었던
사철나무만 생각난다
늙도록 꽃도 없이
지루한 나무다
날은 언제 풀리려나
기왓장도
반달도 새파랗게
얼어붙는다
-장석남-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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