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소울 푸드(Soul Food) 라는 표현을
흔하게 접합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에서 살았
던 20여 년 전만 해도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미국에 와
살면서 소울 푸드라는 말을 접했을 때도 그저
요식업계의 상술에 기반한 말로 ‘영혼의 음식’
또는 ‘마음을 움직이는 요리’ 정도로만 짐작했
습니다.
2003년 이맘때였습니다. 우연히 방송 촬영
때문에 미국의 남부 테네시주의 한 소도시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오전 일찍 시작
된 촬영이 마무리될 즈음 동료 하나가 인근에
소울 프드를 잘 하는 식당이 있다고 하니 그곳
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말로만 들었던 그 소울 푸드라는 것을 맛보게
되는 구나 하고 기대했습니다.
촬영 후에 동료와 함께 그 식당을 찾아갔는데
출입문 앞에 초로의 한 흑인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식당 문을 열어줬습니다. 그는 식당 문가
에 서서 찾아오는 손님을 대신해 문 여는 일에
익숙해 보였습니다. 경황이 없어 그냥 바로 식
당 앞으로 들어섰지만 나갈 때는 그를 기억했
다가 어떻게든 감사를 표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튀김 냄새가 진동하는 식당 안엔 테이블마다
피부색이 짙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대부분이
었습니다. 뷔페처럼 접시를 들고 가서 원하는
음식을 떠서 먹는 곳이라 음식들을 찬찬히 살폈
습니다. 생선과 각종 육류에 튀긴 닭이 제일 먼
저 눈에 띄었고 콩 요리와 각종 수프도 보였습니
다. 마침 쌀밥도 있어 이것저것 담으면 훌륭한
점심이 되겠다고 생각하며 접시에 골고루 담아
테이블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즐겨 입는 짙은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한 중년의 아시안 여성이 제게
한국말로 물어왔습니다. 그녀의 노란색 원피스
와 그 옷에 어울렸던 장신구들이 조금 낯설기는
했지만 한 눈에 봐도 그녀는 한국인이었습니다.
아마도 동양인 방문이 흔치 않은 식당에서 저를
본 게 너무 반가워서 먼저 인사를 건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린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전 곧 그녀가 이 식당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선 그녀에게 소울 푸드
에 대해 물었고 그녀가 답했습니다.
“소울 푸드는 노예로 끌려와 온갖 설움을 겪었
던 아프리카 이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입니
다. 집주인이 먹고 남긴 식은 음식을 손쉽게 기
름에 튀겨 데우고 아프리카에서 요리할 때 사용
했던 식재료와 향신료를 섞어 고향 음식처럼
만들어 먹었습니다. 음식으로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던 거죠. 그렇게 처음 시작
됐다고 해요”
“그런데 왜 소울 뮤직도 그렇고 먹는 음식에
영혼을 뜻하는 소울(Soul) 을 붙였을까요?”
평소 궁금한 게 많은 전 때는 이때다 싶어 다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다음처럼
답했습니다.
“글쎄요.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지
만 이해는 됩니다.얼마나 위로가 간절했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으면 혼신을
다해 이겨내려고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의 대답은 제 질문보다 매번 멋졌습니다.마치
오래도록 소울 푸드에 대해 생각해온 사람 같았습
니다. 아니 그때만큼은 한국인이기보다는 그녀의
식당을 즐겨 찾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
었습니다.
그녀는 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손님이
가게로 들어설 때마다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
가 인사를 하고 포옹하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녀를 만난 대개의 손님 역시, 마치 오랜 친구
대하듯 그녀를 편하고 따뜻하게 대했습니다.
그리고 의례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면
한국인 종업원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녀의 가게
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대개가 아프리카 이민
자들 같았습니다.
“식당을 처음 열었을 때 힘들진 않으셨어요?”
” 힘들었죠. 아무래도 제가 동양인이니까. 이 사람
들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드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 많은 분이
찾는 식당으로 만드셨어요?”
“그러게요. 그게. 가게를 시작하고 한참 힘들었
을 때인데. 저도 저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이와 함
께 식당을 찾았는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으
니까 아이 것만 주문하고 정작 자신은 음료수만
시키는 엄마부터, 종일 굶었는데 돈이 없어서
식당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까지..그런 사람들
이 제 눈에 보이면서부터 손해를 보더라도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요.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
요. 남몰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때부터…우리
식당 요리가 맛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이야기 때문이었는지 모르나 제가 접시
에 담아온 요리 하나하나가 혀에서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기름기 가득
해 보이는 요리도 특유의 향료 덕에 고소한 맛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한국과 문화와 환경이
전혀 다른 이곳에다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위한
식당을 열었고 어려운 적응의 시간을 보내는 중에
이 지역 사람들의 어려움도 함께 이해하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남몰래 형편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
을 돕기 시작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모두 에게서
사랑받는 소울 푸드 식당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
나지 않습니다.
(다음 회에 두 번째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요즘 책상에 차분히 앉아 제 생각을 정리할
심적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한 마음이나 따뜻한 이해도 부탁
드리겠습니다.여러분 모두 이 어려운 시간을
건강히 잘 보낼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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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인지 심리학으로 유명한 김경일 교수가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상위 1% 중에서 최상위 0.1%의 학생들의 특별한 공부법에 대해 알아보는 방송을 하겠다고 홍보성 멘트가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그 방송국 PD와 함께 최상위 몇몆의 학생들을 일상과 그들의 공부법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조사 하였지만 너무도 실망스럽게도 그러한 학생들은 여느 학생들처럼 그들의 공부법에는 별로 다를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부모님의 재산이나 자신이 속해있는 학군이나 부모님의 학력이나 심지어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이나 재산 부모님의 지식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들 학생들은 특별한 과외나 쪽집게 수업을 받는것도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열심히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아이큐는 일반 학생들과도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김교수와 피디는 갑자기 난감했습니다. 이들 학생에게는 분명 특별한 공부법이나 무언가 특별한 것이 따로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게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최상위권의 학생들의 공부법을 내 보내지 못하게 된다면 사실 방송사고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엄청난 실망감과 난관에 봉착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들 학생들을 계속 모니토링 하던중에 아주 재미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어느 한 반에서 일어난 일이였습니다. 수학 문제중에 X²에 관한 문제 였습니다. X²=X×X 인데 최상위 학생이 있는 반에서 그반 제일 꼴찌가 일등인 학생에게 왜 X²에서 2는 자그마하게 표기되어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엑스 자승 즉 엑스제곱이라고 읽는 다는 것도 3년만에 처음 알았다고 하자 그반 아이들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최상위권에 있던 이 학생도 왜 X²에 있는 2가 왜 자그마한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그 학교 수학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왜 2가 작은지를 물었습니다.
사실 수학선생님도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김경일교수가 속해있는 대학의 수학 교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교수는 세계 100대 수학자 중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도 왜 2가 작은지를 사실 몰랐던 것입니다. 김경일 교수는 네이버 지식창에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답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올라온 답은 그런것 묻는게 아닙니다 라는 답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초등학생이 장난스럽게 올린 답글이었습니다. 급기야 이 0.1%에 드는 학생은 결국 구글 검색창을 한참을 뒤져서 그 답을 찾아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옛날의 수학자들은 거의다가 시계 수리공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수학으로서는 식생활이 해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최고 첨단 기기인 시계를 수리하거나 만드는 일에 종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식생활을 해결하였던 것인다.
시계의 시발점은 사실 천문학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의 개념도 하늘의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고 정교한 시계의 톱니바퀴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높은 숫자를 하늘의 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별은 작게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X²의 2를 별처럼 작게 표기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답을 찾고나서 최상위 0.1%의 학생은 그반 꼴찌에게 아주 재미나게 전혀 전문용어를 쓰지않고 잘 설명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김경일 교수도 이 학생들에게 또하나의 사실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들 최상위권 학생들의 집에는 반드시 화이트 보드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들 학생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문제나 사실을 누구에게나 보드에 적어가며 설명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전 이일우 이사장님의 강의 중에 설명하지 못하면 모른다는 것이다 라고 한 부분처럼 자신들이 알아낸 사실은 자신의 형 누나 동생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설명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묻는 친구들에게도 친절하게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을 바라보는 또다른 자아를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메타인지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최상위 0.1%학생들의 특별한 공법은 하브루타 공부법으로 남에게 충분히 잘 설명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수많은 경로를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브루타를 통해서 질문하고 설명하면 더 확실하게 알수 있는 것입니다. 메타인지의 헛점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느낌으로만 알고 사실 설명하거나 답을 적을 수 없다면 사실 그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메타인지와 하브루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왜 최상위 0.1%의 학생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고 설명하며 가르쳐 줄까요?
사람은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그것은 베타적인 사람과 중립적인 사람과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이타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중 남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이타적인 사람은 남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남보다 더 높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브루타의 정점은 바로 이타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자신은 더욱더 높은 지혜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메타인지를 잘 알고 있고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은 결코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도 알반적인 어휘로도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왜 유대인이 뛰어난가? 는 바로 이러한 메타인지를 통한 하브루타 방식으로 서로 묻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주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타적인 엄청난 지혜의 사람들로 변모되기 때문입니다.
-스토리 메이커 박성목-
From: 탈무드 이야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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