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간절할 때 찾는 식당 #2
당시 고향에서 납치돼 노예로 팔려 온 대개의
아프리카 이주자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
으로 혹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동안 발표된
문학 작품과 영화를 통해 우리도 이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미국에서 사는 저의 눈엔 노예제도가 폐지
되고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미국 사회 곳곳
에 이들의 깊은 상처와 슬픔의 그림자가 여러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봅니다.
미국 남부의 한 농장에서 당시 일했던 노예들의
사망 관련 기록 하나가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당시 농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32명 가운데 8명 정도만 50~60세까지 살았고,
7명은 40대에, 다른 7명은 20~30대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인원은 5세
가 되기도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혹한 노동과 병을 이기기
어려웠을 척박한 생활 환경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끔찍했을 노동보다 이들의 마음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지옥과 같았을 삶 속에서 서
로 품고 의지하며 기대었던 가족들이 주인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 찢어지고 흩어질 수 있다
는 불안이었습니다. 그건 부부 사이도 마찬가
지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주인들은 노예들 간
의 결혼식은 허락하면서도 신랑 신부가 서로의
눈을 보며 약속하는 성혼 선언문에서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문장만은 삭제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가족과 함께했을 이들의 식탁과 그 위
에 차려진 음식들은 그들의 마음을 더 뜨겁게
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영혼이 매번 그 끼니 앞
에서 간절하지 않았을까? 전 그렇게 생각합니
다. 어느날 갑자기 예고없이 서로의 곁을 떠날
지 모르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
과의 식사는 매 순간이 아마도 간절하게 신의
구원을 찾는 경건한 예배였을지 모릅니다. 오래
전 잃어버린 고향과 다시는 잃고 싶지 않은
가족에 대한 애절한 바람이 그들이 만들어 나눠
먹은 소울 푸드에 자연스럽게 담기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인으로서 미국 남부 지역에 소울 푸드 전문
식당을 내고 그 지역 사람들과 함께 친구와
가족처럼 살아가는 그녀는 직업이 없어 생계가
어려운 이웃을 그녀의 식당 직원으로 채용하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인근 교회에 아이들에게 전해
줄 장난감이며 학용품 등의 선물을 기부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지역 주민들에게 음식을
파는 일을 하기 보다는 힘겨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이 듬뿍 담긴 진정한 의미의 소울
푸드를 나누는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소울 푸드에 대해 알려준 그녀와 인사하고
그 식당을 떠나오면서 출입문 앞에 서서 제게
문을 열어주셨던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또 가만히 안아드렸습니다. 하고픈 말은 많았지
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도 그런 저의
마음을 아는 듯 활짝 웃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아주 특별했던 출장이 끝나고 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바쁜 일상을 살았
고 시간은 다시 쏜살처럼 지나가 버렸습니다.
피부가 검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
가 강력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변
을 낳습니다.그 후 오바마는 다시 공화당의 거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맞붙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오바마 선거 캠프는 당시엔
상당히 파격적인 온라인 사회관계망 서비스
(SNS)를 통한 선거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반향
이 굉장했습니다. 그 덕에 그의 지지율이 오르
고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거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의 발언이 방송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해서 제가 일했던 방송사에선 할렘 지역에 모
여 사는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됩니다.
며칠에 걸쳐 할렘 지역과 사무실이 있던 맨해튼
미드타운을 오가며 촬영이 계속되었는데 전 우연
하게 다시 할렘 125가에서 흑인 남편과 결혼해
소울 푸드 전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 사장
님을 만나게 됩니다. 만나(Manna’s)라는 이름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그분의 삶도 제가 오래전
뵈었던 소울 푸드 식당의 사장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밀집해 살아가
는 지역에서 소울 푸드 전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것 말고도 지역 주민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 따뜻한 마음이
같았습니다.특히 종업원들과 친가족처럼 지내
그녀를 ‘마마’라고 부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
니다. 특히 아프리칸 아메리칸과 한국 커뮤니티
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
고 계셨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력 정치인들과의 인맥도 탄탄했으며 그분의
식당을 찾는 지역 인사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
었습니다.
Manna’s의 사장님은 사실 더 극적인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셨습니다. 제가 할렘에서 식당을 운
영하고 계시는데 동안에 위험한 일은 없었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
니다.
” 몇 해 전 인종차별 관련 사건으로 미국 전역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어요. 이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었는데
아주 거칠었습니다. 인근 상점과 식당 유리에
돌을 던지고 셔터를 부수고. 그래서 주변 상가와
많은 식당이 큰 피해를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식당만 피해가 전혀 없었어요.”
“어떻게 그 난리에 피해가 없었어요?”
” 그게..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씩씩대며
우리 식당 앞으로 지날 때였는데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 여럿이 우리 식당 문 앞에 서서
시위대를 가로막아준 거에요. 시위대에게
그냥 지나가라고 해준 겁니다. 너무 고마웠죠.
정말 고마웠어요!”
2008년 11월 민주당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는
아프리카계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미국의 첫 번
째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그리고 그는 영광스
러운 당선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오늘 밤 전 애틀란타에서 이번 투표에 참여
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그녀
는 오늘 줄을 서 투표를 하여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수많은 국민들과 같은 한 국민입니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앤 닉슨 쿠퍼 씨는
106세라는 점입니다. 그녀의 조상은 노예였
습니다….그녀가 태어난 시기에 그녀는 두 가
지 이유 때문에 투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첫째는 그녀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둘
째는 그녀가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
다. 그리고 오늘 밤, 저는 그녀가 미국에서 살
았던 한 세기 동안 겪었던 모든 변화들을 생각
합니다. 그녀가 겪었던 가슴앓이와 희망들,
좌절과 발전, 그리고 안 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
던 미국의 모습을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위로와 희망이 간절할 때 찾아갈 수 있는 자기
만의 식당을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겁니다.
오늘 저녁엔 여러분 모두, 지친 몸과 영혼을
달랠 수 있는 각자의 소울 푸드를 맛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위로와
단단한 희망을 그리고 그것들을 여러분 삶의
길 끝까지 손에 꼭 쥐고 걷게노라는 용기를
얻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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