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

예술가들

우리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똑같이 견디진
않아요.

방구석에 번지는
고요의 넓이.

쪽창으로
들어온 별의
길이.

각자
알아서
회복하는
병가의 나날들.

우리에게
세습된 건 재산이
아니라

오로지
빛과 어둠뿐
이에요.

둘의
비례가
우리의 재능이자
개성이고요.

우리에게도
공통점이 있죠.
죽고 싶은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요절할 테지만
정작 죽음이 우리를
선택할 땐

그런 순간들은
이미 지나친
다음이죠.

버스 노선에 없는
정류장에 내려서
주변을 둘러볼 때의
어리둥절함.

그게
우리가 죽는
방식이라니까요.
보험도 보상도 없이
말이에요.

사랑? 그래, 사랑이요.

우리는 되도록
아니 절대적으로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해요.

검은 수사학,
재기 어린 저주,
기괴한 점괘.

우리가 배운
직업적 기술이
사랑에 적용
된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지 않나요?

옛날 옛적
어느 선배가 충고했죠.
그대들이 만에 하나
사랑에 빠진다면

동백꽃이 지는
계절에 그러하길.
그것은 충분히 무겁고
긴 시간이라네.

간혹 우리 중
누군가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들려요.

그러곤 아주
끔찍한 일이 생겼다는
뒷이야기도요.

우리의 사랑은
사내연애 따위에
비할 수
없어요.

버스 종점에
쭈그리고 앉아
영원히 흐느끼는
이.

이별을 하면
돌아갈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이.

그 사람이 버림받은
우리의 처량한
동료랍니다.

노동? 그래, 노동이요.

마지막 파업 때
끝까지 싸운 이는
노조 간부가 아니라
연극반원이었
다네요.

그가 경찰에게
몽둥이로 얻어터질 때
세 명의 피 흘리는 인간이
나타났다네요.

그중에
겨우 살아남은 이는
조합원이고

죽은 이는 햄릿이고
가장 멀쩡한 이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조차
못 외우는 초짜 배우
였다네요.

남들이
기운차게
H빔을 들어 올릴 땐
저만치서 뒷짐을 지고
콧노래나 흥얼거리지만

우리는 사실
타고난 손재주꾼
이랍니다.

공장 곳곳에 버려진
쇳조각과 페인트로
불발의 꽃봉오리,
반기념비적인
바리케이드,

죽은
동지들의
잿빛 초상화를
담당하는 건 언제나
우리 몫이죠.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
사이

이를테면
시대와 작업대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서
길을 잇고
길을 잃어요.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
고통의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뭔가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거라고요.
우리는 벤담의 공장에서
자발적으로 해고
됐다고요.

우리는
이력서에
특기는 돌발적 충동
경력은 끝없는 욕망
성격은 불안장애라고 쓰고
그것을 면접관 앞에서
깃발처럼 흔들어요.

그리고 제 발로
문을 박차고 걸어
나오는 거에요.

의기양양하게
그리고 지독히 외롭게.

우리의
직업 정신은 뭐랄까.
살고 싶다고 할까.
죽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조금 유식하게
해방이라고 할까.

네, 압니다.
알고말고요.

우리가
불면에 시달리며 쓴
일기와 유서는 지나치게
극적이라는 것을.

생존? 그래, 생존이요.

언제부턴가
우리의 직업은
소멸하고 있어요.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대체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는지.

모든 공문서에서
우리의 이름 위엔
붉은 X자가
쳐져요.

기억? 그래, 기억이요.

나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심보선-

좋은시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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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Turned my Wailing into Dancing

You Turned my Wailing into Dancing

Hear,
O LORD,

and
be merciful
to me;

O
LORD,
be my help.”

You
turned
my wailing
into dancing;

you
removed
my sackcloth

and
clothed me
with joy,

that
my heart
may sing
to you

and
not be
silent.

O
LORD
my God,

I
will
give you
thanks
forever.

Psalm 30: 10-12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시편 30: 10-12

BIBLE/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성경/개역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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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대가
나를 속인 것
때문이
아니라

이제
다시는
그대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행위는
약속할 수
있으나

감정은
약속할 수
없다.

감정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으므로.

그대를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하는
자는

자신의
힘에 겨운 것을
약속하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
했을 때,

그것은
겉으로의
영속을 약속한
것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섣불리
‘영원’이라고
말하지
말라.

비록
그때는
진심 어린
말일지라도.

그 상대가
상처를 받기는
너무 쉬운
일이니….

-프리드리히 니체-
(독일의 시인,  철학자184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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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Eilish – Ocean Eyes

Billie Eilish –
Ocean Eyes
(Official Music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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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 eyes

Song by Billie Eilish

I’ve been
watching you
For some time

Can’t stop staring
At those oceans eyes
Burning cities
And napalm skies

Fifteen flares
inside those ocean eyes
Your ocean eyes

No fair
You really
know how to make me cry
When you gimme those
ocean eyes

I’m scared
I’ve never fallen from quite this high
Falling into your ocean eyes
Those ocean eyes
No fair

You really know
how to make me cry
When you gimme those
ocean eyes
I’m scared

I’ve never fallen
from quite this high
Falling into your ocean eyes
Those ocean eyes I’ve been
walking through

A world gone blind
Can’t stop thinking of
your diamond
mind

Careful creature
Made friends
with time

He left her
lonely with
a diamond mind
And those ocean
eyes

No fair
You really know
how to make me cry
When you gimme those
ocean eyes

I’m scared
I’ve never fallen from
quite this high

Falling into
your ocean eyes
Those ocean eyes


Songwriters:
Arron Carl Davey /
Finneas Baird O’Connell /
Billie Eilish O’Con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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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입 속의 검은 잎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그 입 속에
악착 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기형도-

속의 검은 ` 대하여

김인수 기자

10 어느 여름날이었다.
유치찬란한 기자 칼럼을 쓰고 뒤에
독자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메일에는 편이 적혀 있었다.
시의 문장이머리에 하고
떨어졌다.

속에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검은 잎은
은유한 단어다. 혀가 놀면
말이 나오고, 말을 종이에쓰면
글이 되는 . 결국 독자가 내게
던진 메시지는 명료했다. ‘당신의 글은
마치 검게 병든 혀가 내뱉은 썩은 단어 같다
것이었고, ‘ 병든 혀가 당신 입에 악착같이
달려 있는 듯하다거였다.

시의 제목은 속의 검은 ‘.
다수 평론가들은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저항한 시로 해석했으나
2000년대에 글을 접한 나는
달리 받아들였다. 평론가들은검은
독재 정권에 대한타협과 굴복의 징후로
풀이했으나, 나는 썩은 언어를 내뱉게 하는
여러 요인들로 해석했다.

게으름과 순응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시의 첫인상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그날 이후 시를 시인기형도라는
이름 자와검은 이라는 시구 자는
기억을 관장하는 뇌세포를  움큼
움켜쥐고 놓지를 않았다. 때때로 그날을
기억하며 그의 시를 두려운마음으로
읽었다. 썩은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했다. 동시에 내게 기형도를 알게 해준
독자에게 진정 감사했다.

기형도를 기리는 문학관이
지난 10 경기도 광명에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문득 그의 삶이
참을 없이 궁금해졌다. 짧은 하나로
누군가의 머릿속을 뒤흔들어놓은 그가
어떤사람인지 자세히 알고 싶었다.
토요일아침 차를 몰고 기형도문학관에 갔다.

그는 짧게 살았다. 1960 2월에 태어나
1989 3월에 사망했다. 심야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그를 () 영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기 시에서 썼듯이 부친이 중풍으로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진 탓이 컸다. 1 벽에 적힌
그의 일생과 시를 읽으면서 실내를
바퀴 돌고 나니, 그의 지인들이
그를 기억하며 촬영한 동영상을 만났다.
그의 외조카인 언론인의 육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986 아시안게임 삼촌이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였어요. 개막식을 보고 기사를
쓰는데 원고지 4~5 썼겠죠. 그걸
밤새도록 . 밤새도록 고쳐요.
그걸 작품으로 생각하더라고.
자기의 영혼이 담긴 작품 같은 .”

무릇 , 특히 시를 쓰는 사람의 자세란
이런 것인가 보다. 기형도는 자신의 글이,
속의 검은 잎이 내뱉는 죽은 글이 되는
죽기보다 싫어한 틀림없었다. 기형도처럼
좋은 시인은 밤새 고쳐 쓰기를 반복하며
자에도 영혼을담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짧은 시에도영혼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시인의 영혼과 조우하게 된다. 덕분에 우리의
정신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다.

정신이 빈곤한 사회일수록
같은 시인의 자산을 모른다.

그저 눈에 번쩍 띄는 거대한 무언가로
스스로를 과시하려 든다. 바벨탑 같은
위압적인 거대 건물을 자랑으로 내세운다.

이는 내면의 빈곤을 숨기고자 하는
열등감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반면
정신이 풍요로운 사회는 다르다. 시인을
기념하는 곳이 중요한 상징이 된다.
시와 문학이 시민들 속으로 들어오는
현장을 소중히 여긴다. 곳곳에 문학관을 짓고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며 시인의 흔적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긴다. 한국 사회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기형도의 유고 시집에 첨부했던
해설이 기억난다. “그의시들을 접근이
쉬운 곳에 모아놓고, 그래서 그것을 읽고
그를 기억하게 한다면, 그의 육체는
사라졌어도, 그는 죽지않을 있다.
그의 시가 충격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빨리 되살아나, 그의 육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육체를
상상할 있게 해줄 것이다.” 기형도문학관이
바로 같은역할을 하기를 소망한다.

From: 매일경제

좋은시詩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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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y and Compassion

Mercy and Compassion

“This is
what the LORD
Almighty says:

`Administer
true justice;

show mercy
and compassion
to one another.

Do not
oppress

the
widow
or the fatherless,

the
alien
or the poor.

In your hearts
do not think evil
of each other.`

Zechariah 7: 9-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스가랴 7: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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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살기

나무처럼 살기

욕심부리지
않기

화내지
않기

혼자
가슴으로
울기

풀들에게
새들에게
칭찬해
주기

안아
주기

성난
바람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이야기 들어
주기

구름에게
기차에게
손 흔들기

하늘 자주
보기

손뼉치고
웃기

크게 감사
하기

미워하지
않기

혼자
우물처럼
깊이 생각
하기

눈감고
조용히 기도
하기

-이경숙-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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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안개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히 안개가 낀다.

2.
이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들어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나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를
공장으로 간다.

-기형도-

 

<안개>는
기형도 시인의 등단 작품입니다.
이 시의 시적 공간은 축축한 기체로
채워져 있습니다. 움직이면 피부가
긁힙니다. 금속성의 기체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약간씩 따끔한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견딜만하고 더 시간이 지나자 고통이
사라집니다.

이 기체는 금속성에 마취성분까지
있나 봅니다.  작고하신 김현 선생님은
그의 시를 두고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이라 했습니다.

그의 시가 일상(사실)을 낯설게 혹은
기괴하게 만드는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안개는 읍의 명물입니다.
하지만 이 고장의 안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춘천 공지천의 안개처럼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안개의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두렵고 잔혹한 것으로 만듭니다.
더욱이 안개가 끼는 것이 아침저녁으로
반복되는 일상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반복을 습관이라 합니다.
습관은 우리 스스로가 익히기도 하지만
어떤 목적을 지닌 사회시스템에 의해
길들여지거나 무감각해져 있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안개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각 없이 홀린 듯이 흘러 다닙니다.

그런 후 어느 날 문득 안갯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경악합니다. 
왜 경악할까요?
물론 안갯속에서 길 잃음은 당황스러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경악’처럼 과장된
제스처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숨을 고르고
안개가 걷치기를 기다려,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면 별문제가 없습니다.

이 시가 괴이하고 공포스러운 것은
화자가 추억하는 곳이 이미 지상에서
소멸되었거나 해체되어가는
시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읍의 사람들이 미친 듯이
흘러 다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습관 이전에 습관에 길들여진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인은 그 이유를 타인의 불행을
방관하거나 그 불행에 책임이 있으나
침묵하는 집단적인 무의식을
안개로 표상합니다. 그래서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은 오히려 낯설고
드문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안개 탓은 아니라는 말은
안개 탓으로 읽힙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개별자로 남고 불행은 단순히 자연재해처럼
불운한 사고로 여겨집니다.

몇 년 사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생각해 보세요. 당시에는
이러한 풍조가 더 했겠지요.

그래서 안개는 침묵하는 시대며,
또한 그 내부에 꿈틀거리는 성장과
상승의 욕망입니다.

공장의 굴뚝 연기는 하늘을 향해
총신처럼 겨눠져 있습니다.

쉴 새 없이 누군가를 밟고
사살하고 올라가는 것이 최선이며
정의인 안개의 성역(聖域)이었습니다.

누구나 안개의 주식을 가지고 있지요.
누구나 조금씩 탐욕과 손을 잡고 있습니다.
이 한국이라는 소읍, 우리가 지나왔던
70·80년대는 농촌과 대가족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었습니다.

외형적으로 성장 제일주의,
독점 자본주의 사회였습니다.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은 세계적인
경기 호황과 맞물려 누구나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많은 농촌인구가 도시로 몰려가
임노동자가 되었고 대도시 주변의 소읍은
빠르게 공업화되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물신(物神)의 시대였죠.
그러므로 기형도 시인이 말하는
안개의 고장은 부도덕한 욕망이 용인되고
오히려 장려되는, 숨 막힐 듯 빽빽한 안개,
독가스로 가득찬 시공간입니다.

자본에 코 끼어 하루하루를
비정규직과 알바로 버티는 청년들을
보면 지금의 상황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나은 점이라면
입이 막히지 않은 것입니다.

막히지 않은 말과 행동이 모여
오늘이 있는 것이니까요.

  아래와 같은
문장에서 안개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개인과 안개를
짝으로 보면 안개는 문제의식이 부재한
사회로 여겨집니다.

이 문장은 화자가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라 말한 여공의
겁탈사건과 취객의 사고사와 묶여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역설적인
진술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기괴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쓰레기더미 취급이나 받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 수는 없습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 학교나
공장에 가듯이 누군가 죽고 잊혀지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 모순입니다. 아니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시인에게는 부정직한 것이라고
여겨졌을지 모릅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계를 적으로 돌리거나 새까맣게
칠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이 짜여진 듯한
차갑고 축축한 그러나 금속성의 틀은
쓸쓸한 짐승에게 채워진 족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기형도 시인이 어느 쪽이었냐는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가 <빈집>에
가둔 것은  무었이었을까요?

짧은 생의 말미에 변화의 기미가
보였지만 김현 선생님의 말처럼
채 피기도 전에 그 기로에서
넘어졌습니다. 젊은 시인의 죽음은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 시대가
불온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어제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간단히 표백되어 오늘이 되고 아이들은
자라서 공장으로 가 자본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이런 뒤틀린 일상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안개는
걷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 고장의
명물은 안개가 될 것입니다.

-전기 수리공-

좋은시詩 & 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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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ness and Love

Goodness and Love

Surely
goodness

and

love
wi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시편 23: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 6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성경/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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