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o Mars –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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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EILISH
FULL ALBUM TERBARU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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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m App>
Love Each Other
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
Greater love
has no one
than
this,
that
he lay down
his life for his
friends.
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John 15: 12-1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 12-14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성경/개역개정
***
LL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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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m app>
행복의 문
태양을
바라보며
살아라.
그대는
그림자를
볼 수 없으리라.
해바라기가
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지 말라.
머리를 언제나
높이 두라.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라.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불구자라
할지라도
노력하면 된다.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헬렌 켈러-
(미국 작가이며 교육자, 1880-1968)
좋은시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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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y 이순희 Lee, Soon Hee>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2월 14일을 흔히 밸런타인데이로 기억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초콜릿을 주는 날로 1년 중 초콜릿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즌이 되면 거리 상점들에는 가지각색의 초콜릿들이 진열되고, 초콜릿을 화제로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간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각종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를 통해 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수년째 2월 14일을 밸런타인데이로 기억하고 있던 필자 역시 지난 14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먼저 떠올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사형일도 아닌 사형선고일을 기억해야 하는 걸까. 이 문제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안중근 의사가 왜 사형 선고를 받았을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이토 히로무비를 사살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만, 필자는 좀 더 자세한 정황을 머리와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필자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당시의 상황이 담긴 유물과 자료가 전시돼있는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서울 중구 소월로)을 찾아가 안중근의사기념관은 남산도서관(서울 중구)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남산도서관의 뒤편으로 걸어가다보면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을 마주한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안중근의사기념관 입구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그 뒤편의 태극기가 먼저 반긴다. 그리고 그 태극기 위로 피로 쓴 ‘대한독립’이라는 글자가 무겁게 다가온다. 안중근 동상의 배경이 되는 그 태극기 하나만으로 안중근 의사가 마음 속에 지녔던 독립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총 2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은 지하의 제1전시실부터 1층의 제2전시실, 2층의 제3전시실로 지어졌다. 제1전시실은 안중근 의사의 시대적 배경, 출생, 가문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제2전시실에는 천주교 신자로의 국내활동, 의병투쟁, 동의단지회와 관련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제3전시실은 하얼빈 의거와 법정투쟁, 육중에서 남긴 글, 안중근 의사의 순국을 다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더불어 기획전시실, 체험전시실, 추모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던 상황과 사형선고를 받게된 경위는 제3전시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던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경,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역에서 내려 수행원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있었다. 그 순간 러시아 군대 뒤에 숨어있던 안중근 의사는 총을 쏘았고, 이토 히로부미는 흉복부에 총알 3발을 맞게 된다.
안중근 의사는 혹시나 다른 사람일까 싶어 일행 중 일본인으로 보이는 3명에게 3발을 더 쏘았다. 그 결과 하얼빈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비서관 모리, 만주철도 아사 다나카가 총에 맞았고 차례로 쓰러졌다. 이 때가 오전 9시 30분이었다. 저격 직후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 의사를 덮쳐 넘어뜨렸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다시 일어나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했고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안중근 의사의 총탄을 맞은 이토 히로무비는 응급처치를 했지만 결국 사망한다.
안중근 의사의 죽음은 일본을 분노케 했다. 원래대로라면 의거가 이뤄진 곳이 러시아 관할구역이라 러시아 재판을 받았어야 했지만, 1905년 을사늑약에 따라 재외 조선인에 대한 재판 관할권은 일본에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거사 당일 안중근 의사를 러시아로부터 인계받았다. 이후 1910년 2월 7일부터 다섯 차례의 공판을 치르게 되는데, 2월 14일 마지막 공판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처음부터 안중근 의사를 사형할 목적으로 의도된 재판이었고, 국제법을 무시한 부당한 재판이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공소권을 포기한다. 공소권을 포기한 배경에는 안중근의 어머니 전언이 있었다. 안 의사의 어머니는 면회를 가는 두 동생 편에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니라”라는 말을 전했다.
사형이 확정된 이후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고, 고등법원장 히라이시는 공소권을 포기해준 만큼 동양평화론을 완성할 수 있게 사형집행을 미뤄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그런 약속과는 달리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됐고, <동양평화론>은 미완성의 유고로 남게 된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15분. 32세의 나이로 안중근 의사는 순국한다. 우리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중근 의사는 포로로 대우받고 만국공법에 의해 재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일본 국내 형법에 따라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는 대한민국의 사법권이 무참히 침탈당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사형은 극악무도한 죄질을 가진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일생을 독립을 위해 바쳤고,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합법적인 교전행위였다. 그런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것은 안중근 의사가 해온 일들 전부를 부정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사형 선고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밸런타인데이라는 상업적인 기념일에 가려져 안중근 의사를 기리지 못하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2월 14일은 일본이 안중근 의사를 사형당할 정도의 큰 죄를 지은 죄인으로 만든 날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의 일생과 업적을 되짚어보고, 사형선고일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그래서 더욱 의미있는 일이다. 필자가 사형선고일 전날인 13일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관람객은 필자를 포함해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방명록을 보니 우리 국민들보다 외국인들의 서명이 훨씬 더 많았다. 대한민국의 위인을 우리가 더 몰라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안중근 의사의 상현선고일이 왜 의미있는지 궁금하다면,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을 방문해봤으면 한다. 단순히 그곳에 가보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의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2월 14일은 초콜릿을 주고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기념일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이날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변화가 필요하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에 담긴 의미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2015.02.16
정책기자 김하늘(프리랜서) hanelous@naver.com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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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m app>
Do What is Just and Right
This is
what the LORD
says:
Do
what is
just and right.
Rescue
from the hand
of his oppressor
the one
who has been
robbed.
Do
no wrong
or violence to
the alien,
the fatherless
or the widow,
and
do not shed
innocent blood
in this
place.
Jeremiah 22: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예레미아 2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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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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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m app>
삼십대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심보선-
*심보선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4년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16회 김준성문학상
(2009)을 수상했다.
좋은시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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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Info from app>
Major Lazer –
Cold Water
(feat. Justin Bieber & M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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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ress
Park Si-eun (박시은) and
actor Jin Tae-hyun (진태현) couple
and their adopted daughter.
Photo story from SBS Reality Show
‘You are My Destiny’.
*Not an ad*
<Photo from App>
갈색 가방이 있던 역(驛)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은
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읽을 시간도
달려오는 열차를 피할
시간도 없었네
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읽다 만
소설책,
쓰다 만 편지
접다 만 종이학,
싸다 만 선물은
없었네.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전지전능의
황금열쇠여,
어느 제복의
주머니에 숨어 있건
당장 모습을
나타내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이것 봐. 멀쩡하잖아, 결국
자기 잘못이라니까.”
갈가리 찢긴
소년의 졸업장과 계약서가
도시의 온 건물을
화산재처럼
뒤덮네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무렴. 직업엔
귀천이 없지,
없고 말고.”
소년이여,
비좁고 차가운
암흑에서 얼른 빠져나오렴
너의 손은 문이 닫히기도 전에
홀로 적막했으니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난 그를 향해 최대한 손을
뻗었다고.”
허튼 약속이
빼앗아 달아났던
너의 미래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마, 여기엔 이제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는
소년은 없다네.”
자,
스크린도어를
뒤로하고 어서 달려가렴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에게로 쌩쌩
달려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 하고
외쳐 주세요!
우리가
지옥문을
깨부수고 소년을
와락 끌어안을 수
있도록
-심보선-
(구의역을 기억하는 詩)
*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九宜驛-死亡事故)는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외주 업체 직원 김 아무개(1997년생,
향년 19세)가 출발하던
전동열차에 치어
사망한 사고이다.
구의역에서 숨진
비정규직 수리공은 월급을
144만원만 받으며 컵라면도
못 먹을 정도로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서울메트로
출신 전적자들은
손쉬운 일만 맡으면서도
400만원 안팎의
고임금을
받았다.
이 사고의 여파로
2016년 6월 5일, 서울메트로
임원급 및 팀장급 이상 간부 등
총 약 180여 명이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메트로는
팀장급 이상 간부 전원의
사표를 받아놓고
사고 책임 여부에 따라,
또 혁신안 마련에 소극적일 때도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서울메트로는
6일 경영지원본부장과
기술본부장 등 임원 2명의
사표를 수리하고, 스크린도어
업무에 책임이 있는 설비 처장,
전자사업소장, 승강장
스크린도어 관리팀장과
사고 당시 구의역 현장을 관리한
구의역장, 구의역 담당 직원 등
총 5명을 직위 해제했다고 밝혔다.
이 사고에 대해 서울메트로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의 총책임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무조건 책임을 지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좋은시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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