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계
옛날엔,
남편이 미운 날엔
시댁도 어김없이 미웠다.
남편이 약속을 안 지킨 날은,
나도 시댁에 가기 싫었고,
시댁 가서 웃을 맘이
도통 나지 않았다.
그뿐인가.
남편이 친정에
서운하게 하면,
나 또한 그에 질세라!
시댁에 절대 잘 할 수 없다는
파이팅 의지가 솟구치곤 했다.
‘너만 좋을 순 없지’
그 땐 딱 그랬다.
남편과 시댁을
연좌제로 평가했다.
그 땐 확실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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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머님이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셨다.
시댁에 합가 한 후,
어머님이 홀로 집을
비우신 것은 처음.
솔직히 단 1박 2일로
큰 변화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건 정말 안일한 생각이었다.
퇴근 3분 전,
웬일로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글쎄, 퇴근 했는데, 배고픈데!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단다.! (…?)
부랴부랴 집에 도착하니,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아침도 만만치 않게
정신없었던 흔적)
거실을 치우면
안방을 어지러 놓고,
안방을 치워 놓으면,
거실을 어지르는 아들에,
어머님이 안 계신데도,
빨래는 왜 이렇게 그득한지,
도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급기야,
할머니가 보고 싶은 아이는
울먹이기까지 했는데,
나 또한 어머님이 정말 기다려졌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꼭 집안일 때문인 것 같지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이상하게 많은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 언젠가 옛날에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한글과 영어가 쓰인 퍼즐매트 위를
소리 내며 뛰시던
어머님이 생각났다.
내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줄 때면,
처음 듣는 이야기 인양,
집중해서 들어주시던
어머님이 생각났다.
아이의 재롱을 볼 때,
‘정말 귀엽지’ 하며
내게 눈짓하시던
어머님이 그리웠다.
결혼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딸이 없어서 딸처럼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어색하게 끼셨던
팔짱의 촉감이 떠올랐다.
내가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바로 백화점으로가 옷부터
사주셨던 어머님이 생각났다.
(어머님 옷은 모두 누군가에게
받은 것인데, 나는 무려
백화점에서 옷을 사주셨다)
그 때 그 순간에
어머님이 오셨다면,
슈퍼 우먼처럼
모든 상황을 해결해주시고,
‘힘 들었지’ 해주셨을 텐데.
그날은 정말이지,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모습의 어머님이 떠올랐다.
아마, 이럴 때를 위해
만든 말이지 싶다.
‘참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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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어머님과
남편이 하나였는데,
이젠 어머님과 나만의
관계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나보다.
그래서 언젠가 부터는
남편이 미워도,
어머님께는 잘 보이고 싶었나보다.
-글/날며-
<날며의 결혼일기>中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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