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애
통신사 ‘무제한 요금제’의
최대 수혜자인 나는
엄마에게도 자주 전화해 수다를 떤다.
물론,
그 끝이 늘 잔소리로 끝나
기분 상할 때가 많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또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늘 엄마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을 보면,
엄마와의 통화가 내게
즐거움을 주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결혼 후
몇 년 간 이어져온
우리의 통화에
최근 달라진 게 있다면,
최근엔 둘이 아니라
셋이 통화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꼭 나나 엄마가 말한 후,
바로 맞받아치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인데,
귀신인가 하면 ~
다행이 그렇지는 않다!
웅얼웅얼 뜻을 알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아빠이기 때문.
정확히 그 때를
알긴 어렵지만,
언젠가부터
‘아빠는 오셨어?’라는 내 질문에
엄마는 ‘응 아까 와서
밥 먹고 TV봐!’ 라는
대답이 돌아온 지 꽤 되었다.
엄마의 푸념에 의하면,
아빠는 요즘 꼭
‘아줌마’ 같다고 했는데,
이야기인 즉,
매일 8시면 땡하고 퇴근해서
부랴부랴 밥을 드시곤
8시 이후에 시작하는
드라마 두 편을 연속으로
시청하신 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영락없는 주부’ 또는
‘영락없는 아줌마’라 표현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빠는 한 번 시작하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일일드라마의 매력에
흠뻑 빠지신 모양.
아줌마라고 놀리며
귀찮다고 말하지만,
나는 엄마가 이 상황을
꽤나 만족스러워,
아니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목소리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요즘 우리의 통화는
내가 말을 한 후 엄마가 통역하고,
아빠의 말을 다시 엄마가 전달하는
그런 식이다.
며칠 전엔
추석 집안일 분담에 대해
엄마와 열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아빠가 대뜸
‘추석에 설거지 안 하려면
내려오지 말라~네 엄마 힘들다’
하시는 것이었다.
생전 엄마 편 한 번 든 적 없었던
무뚝뚝한 아빠가
엄마의 역성을 다 들다니,
이건 필시 기분 좋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어쩌면,
술 먹자는 친구들의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8시면 땡 하고 집으로
귀가할 수 있는 이유는,
요즘 아빠를
흠뻑 빠지게 한
매력적인 장본인은
일일드라마가 아니라
‘엄마’인 게 아닐까.
두 딸의 목소리가
사라진 텅 빈 집에서
엄마 홀로 공허한 시간을
보낼 까 걱정되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두 분의 연애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나는 즐겁다.
그러니 이젠 방해꾼 없는 집에서
두 분이 애틋하게 사랑하시라.
-글/날며-
<날며의 결혼일기 中>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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