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로맨스
“ 여보, 옛날에 예능 TV 많이 봤지?
그 때 왜 소개팅 한 다음에
상대 이성이 마음에 들면,
약속 장소에 짜잔 등장한다던지,
차에 타는 거 있었잖아~ 기억해?
우리 그걸로 하자!
나 실은 지금 좀 피곤하거든.
그니까 나도 내가 그 버스를
탈지 안 탈지 모르겠어.
만약, 내가 네 버스를 타면,
네 마음을 받아드린 걸로 하자!“
반대편 전화기를 든 남편은
그게 뭐냐고, 오글거리고, 유치하다고
속사포 같은 랩을 내뱉었지만,
확실히 그도 나도 웃고 있었다.
아참! 그건 그렇고,
과연 나는 그 버스를 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당연히 그 버스에 탔다.
이미 60분이나 기다려서
5분만 더 기다리면 목적지에 한 번에
갈 수 있는 눈앞의 버스를 보내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다른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한 시간 반이나 기다린 후에.
그 버스는 다름 아닌
남편이 운행하는 버스였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이 도착하는 정거장 근처
카페에서 또 커피를 마시며,
(퇴근 이후에만 커피 두 잔째 니글니글)
남편의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손에 있는 휴대폰 속 작은 버튼을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요즘은 세상이 정말 좋아졌다!
단 한 번의 클릭만으로
실시간 변경되는
남편의 차량 위치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의 버스가 내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올수록,
남편을 기쁘게 해줄 생각에
새삼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다.
업데이트 되는 화면에서
남편은 내게 오고 있고,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다시 이동하면서,
두근두근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결국, 버스가 도착했을 때,
그도 나도 눈빛을 한 번 마주치곤,
웃기만 했지만,
말이라곤,
“기사님 ! 수고하십니다!”
“네 감사 합니다” 뿐이었지만,
뒷좌석에 앉아 운전하는 남편을
보는 일도, 버스가 멈췄을 때
가끔 거울에서 눈이 마주치는 것도.
모든 게 새롭고 즐거웠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특별하고 멋진 상황,
예를 들면,
연예인과 팬의 만남이라던가,
재벌남과 신데렐라 이야기!
(애기야 가자! 같은)
또는, 첩보원들의
로맨스는 아니었지만,
버스 어플에 설렐 수 있는
내 상황이 소중하고, 특별했다.
왠지, 만약 이런 상황의 드라마가 있다면,
그 주인공들은 이렇게 사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물론, 그 뒤에 만나선
언제 설레었냐는 듯 모든 것을 잊고
또 티격태격 했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완전히 잊어버린 감정일 줄 알았는데.
결혼 후 5년이 지나면 당연히
‘설렘’ 따위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없어졌던 게 아니라,
잠시 숨어있었던 것 마냥.
-글/날며-
<날며의 결혼일기/그들만의 로맨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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