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Portrait, 1901 by Pablo Picasso
나를 사랑한 미용사 (최종회)
가족 모임에서 윤선생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
았다.하지만 간간히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눈웃음을 지었다.나도 그럴 때마다 함께 미소
를 보내면서 그가 바꿔놓은 머리를 한 번씩
폼나게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식탁 저만치
에서 마침 젓가락으로 깍두기 하나를 들던
아내가 멈칫하며 나와 윤선생을 번갈아 보더
니 흥미롭다는 듯…. 째려보고 있다.
교회 모임이라고는 하나, 다들 살아가는 이야
기를 나눈다.한인 밀집 지역에서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는 권총 강도 이야기가 주된 화제
였다.대개 범인들은 맥시코에서 넘어온 불법
체류자들인데 유독 한인들의 피해가 많다고
했다. 이유인 즉슨 이들이 처음 미국으로 건너
와 한인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데 한인 업주에게 임금을 떼이거나 인종 차별
을 당하는 경험이 많아 그런 것 같다는 이야
기였다.그리고 역시나 매일 빠지지 않는 아이
들 교육 문제에 대한 고민들과 이런저런 학교
정보들을 나누었다.그 얘깃거리 마저 떨어지
자 이젠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
램 에 대한 생각들을 서로 나누었다.
마침 생각이 나서 돌아보니 어느새 윤선생의
자리가 비어 있다.궁금했다. 그래서 나도 슬
그머니 일어나 그를 찾기 시작했다.그런 나를
알아보고 00이 아빠가 슬쩍 손짓으로 집 밖으
로 나간 것 같다는 손짓을 한다.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섰다.두리번 거려
그를 찾았더니 한 블럭 떨어진 길목에서 담뱃
불 하나가 반짝였다.나는 직감적으로 윤선생
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그가 있는 쪽으로 서
서히 걸어갔다.그랬더니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담뱃불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꺼진다.
“괜찮습니다. 그냥 피우시죠!”
그가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
불을 붙였다.
” 교회는 제 성격에 맞진 않는데 그냥 가족들
때문에 나오게 되었어요. 그나저나 이 담배,
끊어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요즘 미장
원 일은 어떠냐고 물었다.그리고 지난번 머리
스타일이 너무 좋아 많은 사람들이 미장원 이
름을 물었다고 했다.그리고 내가 그를 처음 만
났을 때의 이야기도 했다.무엇보다 윤선생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줄 알았다고 농담도 했다.
그는 내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한다며 어린
애처럼 깔깔 웃기도 했다.가을이 머지않은 여름
밤의 공기 속에서 포니테일의 머리를 한 남자와
반달곰을 닮은 남자는 마치 연인처럼 그렇게
마주보고 오래도록 수다를 떨었다.그리고 어느
덧 그의 마음이 편안해진 것을 확인한 나는
거짓말 같은 그의 과거를 하나하나 캐물어갔다.
” 상비군이긴 했어도 태권도 국가대표에 청와
대 경호원 생활이 지금 생각해도 굉장한 경험
이긴 해요.그 시절 나름대로 그 생활이 즐겁
기도 했구요.그런데 어느날, 경호 업무를 하다
가 잠깐 다리를 다쳐서 쉬게 된 적이 있어요.
사실 걷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경호
업무는 할 수 없었죠.그래서 병가를 내고 잠시
쉬었어요.그렇게 며칠 쉬는 동안,고모님이 미
장원을 개업하셨다고 해서 잠깐 들려 인사나
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제가 방문했을 때 손님
은 많고 일손이 달려서 제가 손님 한 분의 머리
를 감겨드리게 됐죠.그때 처음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머리를 만지는 느낌이라
고 해야 하나? 좀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
만 제겐 아주 특별했어요.마음이 편해지면서
기분도 살짝 좋아지고…청와대에서 군복무를
마치면서 바로 미용학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나도 처음 대학 선배에게 떠밀려 영화 촬영용
16mm 아리플랙스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되었
을 때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그래서 누구
보다 그의 마음을 잘 안다.그가 내 머리를 만
졌을 때의 기억이 이젠 새롭다.더는 내게 불편
한 기억이 아니다.그 후로 윤선생은 숱한 여성
들의 머리를 자르고 다듬었을 것이다.자신 조
차도 이젠 여성처럼 부드럽고 긴 머리를 가졌
다.말투며 얼굴 표정의 움직임까지 그렇게 매
일 조금씩 머리의 부드러움을 닮아가고 있다.
날카로운 칼과 필살기를 가진 권법으로 무림
을 제패한 고수가 우연히 들판을 지나다가 무
심히 본 발견한 들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칼과
야성을 버린 경우와 같다.그를 처음 만났을 때
만큼이나 그날 밤 어둠 속에서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후로,나는 그의 단골 손님이 되고 그는 나의
헤어 스타일을 수시로 바꿔주는 헤어드레서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했더니
방송 장비 오디오를 담당하는 후배가 내게
뉴욕 타임즈를 내밀며 한마디를 했다.
“이 양반 한국 사람이라는데..뉴스 좀 되겠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니 자기 업소에 권총 강도가 셋이나 들이닥
쳤는데 맨손으로 그들 모두를 제압해 경찰에
넘겼다는 거에요. 도대체 목숨이 몇 개길래…”
나는 뉴욕 타임즈 사회면에 나온 그의 얼굴을
보고 활짝 웃고 말았다.
* 그동안 연재해 온 “나를 사랑한 미용사”에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제 친구이고 이곳에서
함께 지내고 있기 때문에 그분 사생활 보호
를 위해(?) 제가 몇 가지 이야기는 창작해서
더했습니다.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리겠습
니다.정말 개인적으로 즐겁기도 하고 부담도
됐던 한 주였습니다.고맙습니다.^^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