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대학에서 수영과 다이빙을 가르치는 코치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밤늦게 풀장으로 갔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수영이나 하자며 갔던 겁니다.
전등은 켜지 않았습니다. 풀장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장도 유리였기에 굳이 불 켤 이유도 없었습니다.
달빛이 풀장에 가득했습니다. 다이빙하려 발판에 올라섰습니다.
두 팔을 벌리자 달빛에 비친 몸이 십자가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그는 팔을 벌린 채 바라봤습니다.
이상하게 뛰어내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림자 십자가를 보는 순간 예수님 십자가가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한동안 성당에 나가지 않았지만
수없이 보아왔던 십자가였습니다. 한참을 다이빙 발판에 서 있던 그는 가만히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풀장 바닥까지 갔는데 물이 없었습니다. 관리인이 물을 빼놓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겁입니다.
순간 차가운 전율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그냥 다이빙 했더라면 목이 부러지는 참사였을 겁니다.
풀장에 비친 십자가가 사고를 막아줬던 것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우연인 듯해도 모두 필연입니다.
누군가 그를 위해 희생했을 겁니다. 누군가 그를 위해 기도했을 겁니다.
그러기에 하늘의 힘이 함께 했을 겁니다. 지나치면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충격적인사건이었습니다.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면 또 다른 눈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신은근 신부 (콜로라도 덴버 본당)
Photo by Young 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