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회생

최정례

한 달에
두 건 가지고는
유지가 안 돼요.
여덟 건 이상은 해야 돼요.
여름에는 노인들이 잘 안 죽어요.

이 업종에도
성수기가 있다니까요.
요즘엔 일을 통 못했어요.
한때 우리가 바가지를 씌우고
불친절하다고 소문이 났었지만

그래도 지난겨울엔
여섯 건은 했거든요.
요즘은 친절하려고 애쓰는데도
회복이 잘 안 되네요.

땅 사고 건물 짓느라
은행 빚을 많이 얻었어요.
장사가 잘돼야 이자도 내고
원금도 갚아나가지요.

이 김포시 인구가
이십사만인데 보시다시피
막 신도시가 들어서고 있잖아요.

머지않아 오십만은 될 것이고
그중 노인 인구가 점점 불어나
이제 20프로는 노인이거든요.

그중 5프로만
죽는다 해도,
그리고 대부분 큰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식을 하고
나머지 10프로만
우리 장례식장에서
처리한다 해도 틀림없이
우린 회생할 수 있어요.

겨울까지만
좀 기다려 주세요.
노인들이 여름에는
잘 안 죽어요.
비수기라니까요.
(개천은용의홈타운/창비/2015)

○ 시(詩) 평론

▶감상평
우리의 이야기이며,
바로 나의 이야기를
우리는 아주 국어책 읽듯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어 내려간다.

“어제 밤에 말야.
큰딸 아이가 밥을 먹다가
스르르 쓰러져서 병원에 갔더니
그대로 죽었어. 응,

그게 고3 딸인데 수능 공부를
새벽 3시까지 늘상 했거든.
안됐지 머야!
뭐 대학 떨어지면
고생길이 훤한데 어쩌면
자신에게는
잘 된 일인지도 몰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대화가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난다.

“아  글쎄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다가 배가 뒤집혀서
30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다 죽었데. 안됐지?  교통사고로는
그것보다 더 많이 죽는데,
그럴수도 있지.

뭐 보상해주면
더 잘된 일 아닐까?
아, 부모들이 돈 벌려고
저 난리를 친데.
아, 장사안돼 죽겠어.
쟤네들 때문에…”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사람들이 많이 죽었나봐.
하필 그 시간 그때에 거길 갈게 뭐람.
야! 커피나 타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나봐.
엄청난 사람들이 죽고
아직도 구조중이래.
돈 많은 사람들이
명품 사려고 가서 죽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야.

우리같은 사람은
그런 곳에 한번도 못가는데.
아, 그런데 뉴스에 나왔는데,
그 붕괴 사고에도 어떤 아주머니가
물건을 훔치고 있었어.
세상이 미쳐 돌아가나 봐.”

“일본에 대지진이 나서
원자력발전소도 폭발했나봐.
아, 잘되었지 뭐야.
맨날 독도, 위안부만
이야기하더니 천벌을 받았어.”

“동남아에 쓰나미로
수십만이 사망했나봐.
돈 많은 사람들이 관광여행가서
깨끗이 청소됐어.
이제 인구가 좀 줄었을라나…”

우리는 말을
너무 함부로 막 던진다.
그것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지,
죽음보다 더 잔인한
행동인지를 느끼지 못한다.

돈이라는
물질주의에 묻혀서
사람들은 인성적인 부분이나
공감하는 능력을 다 상실해 버렸다.

죽음도 이제는
거래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한쪽은 죽어서 슬퍼하고 있어도,
한쪽은 그 죽음으로 먹고산다.

병원은 사람들이
많이 아파야 돈을 벌고,
변호사는 사람들이 많이
싸워야 돈을 벌며,
상담은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어떤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야 돈을 번다.

종교는 이제
하나의 기업이 되었다.
강남에 어떤 교회를 짓는데
3,000억원이라는
말이 뉴스에 나왔다.
10억도 큰돈인데, 100억도 아닌
3,000억원이라는 숫자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장례식으로 거래를 하는,
노인들이 많이 죽어나가야
돈을 버는 장례식장의 풍경으로
우리 시대를 풍자하고 있다.

그 죽어나가서 돈을 버는
대상이 바로 내 부모, 내 배우자,
내 아들딸이라면,
우리는 태연히 그 자리에서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가지고,
거래의 대상으로 삼아
함부로 말하는 상태로
끌어내리지는 못하리라.

나도 중학생 때인가
대학병원에서 비염수술을 하는데,
의사가 인턴들 5~6명을
내 앞에 세워놓고,
‘이 부위는 이런거야.
이 부위는 이런식으로
수술하면 돼.’라고 하면서
수술하다가 멈추고 설명하고,
또 수술하다가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완전 실험쥐가 된 느낌이었다.
인간적인
모욕을 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먹고 사는 문제, 직업상 문제,
환경과 상황의 문제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들,
상대를 좀더 배려하는
언어와 행동들,
그리고 좀더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부분들은
어떠한 시대,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우리는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가 테레사 수녀나
법정스님, 이태석 신부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을지라도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은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윤정현)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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