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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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기억

스물 넷,
3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복학했지만 내 삶의
육중한 비행기는 학교생활로의 연착륙에 실패
한다.

학점은 만족스러웠지만 즐겁지가 않았다.
당시엔 서태지의 음악이 등장하고 종로와 명동
여기저기에 맥주 한잔 마실 돈이면 맘껏 몸을
흔들 수 있는 Rock Café들이 성업하던 때였다.

서점에선 광풍처럼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며
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들,미셸 푸코, 자크 데리
다,장 보드리야르, 줄리아 크리스테바 등의 책들
이 유행처럼 팔렸다.

나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 책들 가운데 몇가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며 흔들림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려고 나름
노력했다.

뒤늦게 시작한 후배와의
연애가 관객없는 연극
처럼 그렇고 그렇게 막을 내린 뒤 여름이 오면서
나는 가방 하나에 옷가지 몇개만 챙겨담고 서울을
떠나기로 한다.

도대체가 아침에 눈을 떠서 가슴
설레이는 날이 하루도 없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서울이 그리워지면 올라오자는 다짐으로
여행을 결정했다.

여행을 떠나기 하루전,
학교에서 나만 만나면 죽기전에 꼭 봐야하는
주요 영화를 추천해달라며 졸라대던 J가 전화를
걸어왔다.

여행을 떠나는 날 꼭 자기를 만나고
가라고 했다. 매번 추천해준 그 많은 영화들을
일일히 챙겨보고 간단한 후기까지 들려줬던
녀석이라 영화를 좋아하던 내겐 마음 속 “동지”
같은 여자 후배였다.

늘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 J가 늘 그렇듯 환히
웃으며 내 손에 자신의
은행 카드를 올려 놓는다.

“형, 혹시라도…여행중에 돈이 다 떨어지면 이걸루
대충 끼니라도 해결하세요.”

내 여행은 생각보다 길었다. 부산에 도착한 뒤로
계속 북진하는 행로였는데 버스와 기차 이용을
최소화 하고 가능하면 걸어서 이동했다.

지방에
흩어져 살았던 친척들이나 군대 친구들을 만났고
여행 경비가 떨어지면 한동안 요식업소나 주점 등
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얼마간 머물기도 했다.

한달 정도가 지나서 새까만 얼굴로 상경했을 때
나는 은행카드를 돌려주려고 J를 만난다.J는 내게
여행이 어땠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여행을 통해 나와 삶 사이를 막고 있던 벽을
허물고 싶었지만 여전히 난 그 벽 속에 있었기 때문
이다.

새까매진 얼굴에 흰 이민 들어내고 슬쩍 웃어
보이며 고마웠다고 말해줬다.그때 J가 내게 이렇
게 말했다.

“형,,,,,내가 잠시나마 형 손좀 잡아줘도 될까요?”

난 평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임에도 사람들
로 가득했던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녀석에게
불쑥 손을 내밀고 만다.

J의 부드러운 손이 내
손등 위에 포개어졌고 그 손은 J를 집에 데려다
주는 순간까지 이어졌다.그 시간 동안에 나를
가둬둔 벽들이 어떤 균열을 일으키며 점점 키를
낮춰가는 것을 느꼈다.

J가 나의 아내가 되고 우리의 신혼이 한참일 때
문득 내게 이런 고백을 한다.

” 난 다른 남자의 손을 잡아도 심장이 뛴 적이
없어서…그런 경험을 평생 못 할 줄 알았어.
그런데 그날 당신 손을 잡던 날… 왼쪽 가슴이
쿵쿵 뛰는 거야.ㅎㅎㅎ. 그때 알았지.이런 기분
이구나! 바로 이 남자구나!”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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