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병(病)
아우는 하릴없이
핏발선 눈으로
거리를
떠돌았다.
아우는
몸 버리고
돌아와
구석에서
소리없이
울었다.
오, 아버지는
어둠 속에
헛기침
두어 개를
감추며 서 계셨다.
나는 저문 바다를
적막히 떠돌았다.
검은 파도는
섬기슭을 울며울며
휘돌아
사납게
흰 이빨을 세우고
물어뜯어도
물어뜯어도
절망은 단단했다.
너무 오래되어서
낡은 이 세상
가을 해 떨어져
저문 날의 바람
속으로
마른 들풀
한 잎이 지고
어둠이 오고
나는
얼굴 가득히
범람하는 속울음을
참았다.
살 부비며
살아온 정든
공기와
친밀했던
집 안팎 구석구석의
생김생김
아우와
누이와
아버지가
작은 불빛
몇 개로 떠올라
바람에
하염없이
쓸리는 것을
보았다.
오, 그때 세상에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가을
저문 바다
섬과 섬 사이
그 사이를
재우고 있는
것은
어둠과 바람과
파도뿐임을
알았다.
-장석주-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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